한국관광공사가 제공한 구석구석 찾아가기 이벤트 안성여행의 한꼭지인 한국 카톨릭의 성지..

미리내성지를 다녀왔습니다.

이곳은 고 김대건 신부의 묘소가 있는 곳입니다.

미리내성지의 간략한 설명을 덧붙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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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성지는 신유박해(1801년) 이후에 크고 작은 박해를 거치면서, 주로 경기도와 충청도 지

방의 신자들이 산속을 찾아들어와 미리내 인근 산골짜기로 옮겨 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

고, 훗날 미리내는 공소와 본당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신자들은 이곳 골짜기 마다 작은 마을들

을 이루며 주로 척박한 밭을 일구고 그릇을 구워 팔아 생계를 유지하며 살았다.
이들은 아침저녁으로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을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하였다.

미리내 성지(안성시 양성면 미산리)는, 한국 최초의 방인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묘소

와, 이윤일 요한 성인의 묘소 유지(遺址), 그리고 <16위 무명순교자의 묘역>이 있는 거룩한 성

지이다.
사제가 되어 이 땅에 돌아온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1846년 9월 16일 만25세의 나이로 극히

짧은 사목 활동을 마치고는 형장의 이슬이 되어 한 점 흠결 없이 순교하였다.
국사범으로 형을 받은 죄수는 통상 사흘 뒤에 연고자가 찾아 가는 것이 관례였으나, 김대건

신부의 경우는 참수된 자리에 시신을 파묻고 파수 경비를 두어 지키게 했다.
교우촌 어른들의 걱정과 격려를 받은 17세의 미리내 청년 이민식 빈첸시오는 파수군졸의 눈을

피해 김대건 신부님 치명한 지 40일이 지난 1846년 10월26일, 몇 몇 교우들과 시신을 한강 새

남터 백사장에서 빼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시신을 가슴에 안고 등에 지고, 험한 산길로만 1백50여리 길을 밤에만 걸어서 닷새째 되

는 날인 10월 30일 자신의 고향 선산이 있는 미리내에 도착하여 신부님을 무사히 안장 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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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리스도의 힘을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형벌을 끝까지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느님, 우리의 환난을 굽어보소서. 주님께서 만일 우리의 죄악을 살피신다면,
주님! 누가 감히 (이를) 감당할 수 있으리이까?
지극히 사랑하는 나의 형제 최양업 토마스여! 잘 있게.
천국에서 다시 만나세“ 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김대건 신부가 1846년 스승과 동료 신부에게 보낸 옥중 서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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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뭉 치 :